온갖 좋은 말로 자장가를 부르다가 소재가 떨어지면 "우리 아가 똥도 잘싸고~" 하며 불러주셨다는 것이다.
솔직히 처음엔 진짜 웃기지만 -_- 생각해보면 정말 제대로 진리의 말씀이 아닐까 한다.
화장실못가면 ... 정말 힘들다.ㅠㅠ
다른 하나는 사람.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 같다.
항상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내 사람들' 말이다.
요즘에 선덕여왕을 진짜 재밌게 보고 있는데
선덕여왕 1회에서인가 죽은 왕이 했던 말이 있다. 정확한 대사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큰 뜻을 이루려면 내 사람을 만들어야한다" 라고.
선덕여왕이 더 재밌는 이유가 바로 어린 천명이나 선덕여왕, 또 김유신이 주위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다른 잡담]
난 정치를 잘 모르지만..
인터넷 댓글들은 보면 볼수록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이명박 엄청 욕하고 노무현은 영웅대접하더니 갑자기 이명박이 기부한다고 하니까 이제는 김대중보고 너는
기부안하니? 하는 식의 글로 게시판에 도배를 해놓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그 상반된 의견이 같은 그룹의 것이라고는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 사람들을 놓고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우리들은 누가 되었던 한 명이라도 묻어버릴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리고 그 대상이 ideally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대통령이라는 것이 한국인으로서 정말 안타깝다.
나 중학생이고 동생이 초등학생일 때 같이 치아교정을 했었는데, 내동생은 관리를 잘 안해서 오히려 턱이 틀어져버리고 말았다. 턱 때문에 컴플렉스가 많았던 동생인데 이번에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최근 동생이랑 같이 8월에 여행을 하겠다고 엄마와 전화로 바득바득 싸우는 날이 많아졌었다. 그때마다 동생이 8월무렵에도 굉장히 아플텐데 넌 왜 그렇게 어릴때부터 똥고집을 부리느냐고 뭐라하던 엄마를 보며, 가족이 보고싶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에 있는말 없는말 다 뱉어내면서 싸우곤 했었다. 그런데 막상 지금 수술중이라는 동생 얘기를 들으니 너무 내 생각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중이다.... -_-
턱을 들어냈다가 다시 위치를 교정해서 끼는 큰 수술이라고 했다. 어제 얘가 죽는 꿈을 꿔서 솔직히 많이 걱정된다(원래 나는 항상 개꿈만 꾸지만)... 보험처리도 안되서 엄청 비싸다던데. 뭐랄까, 돈과 생명을 걸고 수술을 받고있구나..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얘의 모든게 지금 그 의사들 손 끝에 달려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가만히 보니 참 신기한 일이다. 한 사람의 목숨과 안전이 타인의 손 끝에 달려있다니.
동생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즈음에 중이염때문에 수술을 받고 3일간 입원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생각도 난다. 열을 식혀야 한다고 파란껍질 노란껍질 엑셀런트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한댔는데 나도 얼씨구나 좋다며 같이 엄청 먹었었지. 그게 몇년 전이냐.. 10년도 더 넘었다. 시간도 빨리가는구나.
유학오고 나서 동생이랑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유학오기 전에 얘기를 많이 했다는 것도 아니다. 그 때는 우리 둘 다 어렸으니까.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어쩌면 내 친한 친구들에 대해 아는것보다 내 동생을 더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맨날 엄마한테 동생만 너무 좋아한다고 이따금씩 전화로 집안을 뒤집어버리기만 했지. 휴... 생명을 내놓고 수술받고 있다니까 새삼 동생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되는가보다.
파이날이 끝난 이후 할 일이 없어서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을 때면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해 봤자 나에 대한 불만과 투정만 가득할 것 같아서 차마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무기력해져서 마치 삶을 살아내는 방법을 잃어버린 듯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사물들을 비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차려보니 뿌리 뽑힌 나무처럼 다른 이에게 기댄 체 숨만 겨우 쉴 모양으로 살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너무 외로워서. 결국은 내 문제고 내 마음의 문제인데 말이다.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다른 사람이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니.
관계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일년에 한 두번씩밖에 보지 못하는데도 나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는 자체 만으로 큰 힘이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제 3의 힘에 의해서 그 관계가 끊김을 당해야한다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나는 내 몸의 한 부분을 차지하던 뜨거운 물이 갑자기 빠져나가서 허전해지고 심지어는 오싹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외로움. 왜 한 사람을 생각하고 대하는 것에 어째서 다른 요소들까지 신경써야 하는 걸까. 이런 일이 벌써 한 두번 째가 아니다. 아무리 인연이라는 것이 한 순간에 맺어지고 한 순간에 사라지는 그런 무형적인 존재라지만.. 이런 일은 있을 때마다 정말 마음이 아프다.
며칠동안 넋 놓고 앉아있었는데..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마음을 잡으려고 한다.
지난 일들은 이미 끝난 일이니 어쩔 수 있나. 앞으로 잘해야지..
"처음에 나는 밤송이 하나를 받아 들고 그것이 인생이라 여기며 쩔쩔매고 있었던 것 같다. 손바닥뿐 아니라 온몸을 찔러 대는 그것을 버릴 수도, 감싸 쥘 수도 없었다. 겨우겨우 밤송이를 까고 그 안의 것을 꺼내 들었을 때는 그것이 인생인가 싶었다. 그럼 그렇지, 어떻게 산다는 게 밤송이 같을 수가 있는가. 그때는 진갈색으로 빛나는 밤톨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그러나 삶이란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기에 진갈색 껍질을 벗겨 보았을 것이다. 그 안에는 연갈색 융단 같은 보늬가 있었고 그때는 또 그것이 인생인가 싶었다. 밤알을 손바닥에서 굴리며 부드러운 감촉을 즐기기도 했을 것이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中
by 김형경
낙타에게서 빌린 책의 서문에 있는 글인데 왠지 공감이 갔다. 휴학할 때 사는 이유가 뭔지, 공부는 왜 해야하는지 알고 싶다고 배낭 짊어매고 스페인도 갔다 왔었고,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이렇게 다시 이타카의 내 방 책상 앞에 앉아 있지만.. 이따금씩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랑 그때의 나는 뭐가 다를까. 다만 그 시간동안 내가 알게 된 것이라고는 지금 내 두 눈으로 보고 있는 밤송이가 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정도. 내가 보는 한 사람의 모습도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내가 생각하는 삶..또는 세상도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
사람은 정말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네 장래희망은 뭐니?'라고 물을 때 말하는 그런 단어들...엄마, 의사, 과학자, 또는 화가..이러한 것들을 야무지게 제 꿈이라 말하고는 했지만 그 단어들 하나하나가 정말 다른 '삶의 방법'을 의미하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요즘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친구들이나 선배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더 자주 드나보다. 가끔 나는 친구랑 밥먹을 곳을 정할 때 "아 뭘먹어야 잘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하고 우스갯 소리를 하는데, 앞날에 대한 문제를 두고도 이 말을 해야 할 듯 싶다.
나는 아직도 사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보는 세상은 지극히 표면적인 것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이 세상을 살아가는 정석이고, 올바른 길인지도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에 주눅이 들어 '난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나." 하는 자괴감이 드는가 하면 오래된 친구가 대학이 잘 풀리지 않아서 여태까지 방황하는 것을 보며 어느 순간에 연민의 눈빛으로 그 친구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놀라 반성하기도 한다. 한 가지 일을 해도 한쪽에서는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지?' 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한다. 이 세상에 정석이란 것이 존재할까. 옳고 그름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그런데 위 책의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만큼 살면서 터득한 것이 하나 있다면 어떤 실수든 시행착오든 저질러 놓고 보는게 낫다는 것 뿐이다." 우리 엄마 세대인 이 작가분도 이렇게 말하는데.. 이제 겨우 스물두살 된 내가 어떻게 산다는 것을 알까. 결국은 '정석은 없다'가 정석일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비단단어뿐만이아니다. 우리가당연하다고여기는내주변환경과지금처해있는상황도몇 번이고다시곱씹어보면어색하고낯설게느껴진다. 지금하고있는휴학이어렸을때혼자침대에누워서단어를곱씹던그시간과똑같은듯하다. 휴학하는동안대책 없이집안에서뒹굴 거리기도하고,하루종일밤까지꼴딱새면서게임도해보고,아르바이트도해보고,무박으로밤기차 타고바다도놀러가고,무료과외도해보고, 소박하지만 나름 해서는안될것도해보고, 그리고인턴도해보았다. 그시간 동안내가 한 일 중에 앞으로의 학교 생활에획기적인도움을줄만한것들은없어 보인다. 이력서에도좋을만한건아직하나도없다. 더군다나 어렵게 구한 인턴은 중도 하차를 했고.
얻은 것이 있다면 단한 가지.. 제일 소중한 한 가지가있다면내주제를알았다는 것정도.. 내가이사회에서어떤위치에있고왜그런상황에처해있고앞으로어떤방향성을가지고나아가야할지에 대해 대략적인 방향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인턴을 하면서 그걸 가장 마음에 와 닿게 느낄 수 있었다.
비록 2주 밖에 되지 않지만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다. 선배님들을 통해, 주임님 차장님 그리고 같이 로비에서 일하는 다른 부서의 선배님들.. 같이 직원식당에서 밥도 먹고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하면서 그분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또 로비를 지나다니는 손님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마지막으로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정말 나는 같이 일한 선배님들 한 분 한 분을 존경한다. 내가 이렇게 그만 두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정당해 보이는 구실을 만들어서 피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분들은 똑 같이 주어진 상황에서 몇 달 몇 년이고 그렇게 손님들 앞에서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이건 프로가 아니라면 해낼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공부보다 더 어려운 일이 사람을 대하는 일인 것 같다. 그렇게 손님들 앞에서는 웃지만 뒤의 사무실에서 쉴 때 그 분들이 하는 얘기나 전화를 엿들을 때면 그렇게 웃을 수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돈에 얽힌 다른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많지 않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 나보고 비행기 많이 타서 좋겠다고 말씀 하시며 한번도 비행기를 못 타봤다는 선배님도 계셨다. 그분들은 현실 속에서 어떤 드라마에 나온 명대사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는 그런 삶을 사고 계신 것 같았다.
로비에서 돌아다니는 손님들은 처음엔 다 손님이라는 단어로 묶어 그들을 하나로 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개개인의 삶에 대해 궁금해졌고 하나 하나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주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여러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 사람들처럼… 자라서 이런 좋은 호텔에서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고 그런 전문성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학부에서는 공대에 계속 남아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턴을 하면서 내가 처해 있었던 상황과 환경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정환경이나 유학생으로서.. 공대생으로서.. 여자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내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시간을 통해 내가 이 주어진 환경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할게 된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정말 기쁘고 앞이 훨씬 밝아진 것 같다.
2주는 정말 짧은 시간이었고, 또 한 달을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도 하차하게 되었다.. 그만둬야 할까 말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어렵게 구한 인턴이고 또 약속을 한 게 있는데 염치없이 내 마음대로 깨는 것 같아 진심으로 죄송하고 인내심도 없는 것 같고 정말 많은 실례를 범하는 것 같고... 하지만 한 편으로 다시 나의 갈 길을 가기로 생각을 한 이상 남은 시간을 그 길을 위해 열정을 다해 쏟아 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나를 포기하게 한 것들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위험과 초래될 악영향을 망각한 채 중도포기 해버렸다.내가 어떤 생각을 해서 어떻게 오늘의 이 순간이 온 것일까. 우선 나에게 포기하게 했던 이유들이 무엇일까.
하루하루 일하면서 날마다 뭔가 새로운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그 외에는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록 선배들이 새로운 실습생인 나를 배려해주어서 자주 쉬게 해주고 그러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루 8시간을 한 곳에서 계속 서있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계속 서 있다 보면 목 뒤 부분이 심하게 결리고 발에도 물집이 생기고 로비의 담배냄새로 인해 일하는 시간 내내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에 확실히 서비스업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 있다 보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손님이 없을 때 그렇게 몇 시간을 하염없이 서 있을 때면 내가 이렇게 계속 서있기만 해서 무엇을 얻을까 하는 생각이 하염없이 들었다. 물론 벨데스크에서 보는 것이 호텔산업의 전부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일하면서 여러 가지 소스를 통해 들을 수 있는 호텔 산업에 대해서 들으면서 이곳에서는 나의 비전을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의 미래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어느 누구도 호텔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벨데스크 지배인부터 인사부의 차장님조차 공대에 있지 왜 굳이 이곳에서 일할 생각을 했니? 하고 물었고 어떤 분은 심지어 어이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기까지 했었다. 그 어느 누구도 “정말 탁월한 선택이다. 이곳에서 니 꿈을 펼칠 수 있을거다.”라는 긍정적인 얘기를 해주지 않았고 매일매일 그런 소리를 들으니 점점 ‘나는 이곳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주위의 반응과 함께 내가 이곳에 있으면서 직접 보는 호텔의 모습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물론 선배들의 프로의식은 내가 본받고 싶어했지만, 내가 그들에게서 프로의식을 봤던 것은 그 일 자체에서 비전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들이 일하는 모습이 위대해 보였던 것 같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날마다 나는 GSTS(Guest Satisfaction Target Survey)라는 손님대상설문지를 30여통 정도 돌렸어야 했고 그 일은 내가 일하면서 분주하게 바쁠 수 있는 유일한 재미였다. 그 날 오후에도 어김없이 편지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층에 와서 계속 돌리고 있는데 어떤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난 처음에 멀리서 저게 대체 뭔 소릴까 했었는데 그 근처를 지나가는데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망각했던 사실을 하나 생각해내버렸다. 아 여긴 사람들이 묵고 가는 곳이었지. 결국 호텔은 그런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리 겉은 화려해 보여도 호텔산업은 결국 사람들의 원초적인 본능을 해결할 수 있는 장소였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받들며 그사람들 아래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인터콘티넨탈의 슬로건 중 하나가 “the place where your business becomes a success”, 즉 손님들이 중요한 사업을 성사시킬 수 있는 바로 그 장소라는 뜻인데, 이건 겉으로 호텔이란 곳을 화려해 보이게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건 편협된 생각이지만 그 당시 그 장소를 지나가면서 그런 생각이 들면서 왠지 호텔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순수한 꿈이 깨져버리는 것 같았고 내가 살던 온실이 깨져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계속 지내다 보니 계속 몇 시간을 로비에 서있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미래에 호텔을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내주기만 하는 일을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까 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로비에는 그날 있을 행사가 항상 적혀 있는데 그것들을 유심히 보니 호텔을 이용하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 중 기억나는 것들은
a.Connie Talbot 기자회견
(6살 때 Britain’s got talent라는 아이돌을 찾는 프로그램에 나와 미국 전체에서 2등을 한 노래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귀여운 영국 여자아이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3600만의 팬들이 생겼고 그들을 울린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다)
b.대기업 면접
c.결혼식
d.IBM 사업자 정상 회의
e.유명그룹들의 정상회의
f.유학설명회
g.여러 종류의 포럼
등이 있었고 그 외에도 박근혜, 하버드 MBA를 졸업한 수재 펀드매니저인 강수정의 남편, 매일 운동하러 오는 전지현 등의 사람들이 호텔을 이용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호텔을 이용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 분야에 어떤 specialty를 가진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특히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있던 공대에 남아 계속 공부를 해서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3.나의 최대의 실수
하지만 이 모든 것 들을 할 때 내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온 몸으로 온 맘 다해 느꼈다. 바로 responsibility와 인내심을 지니는 것. 호텔에서의 꿈을 접고 나니 나는 이곳에 있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더 이상 이곳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호텔산업에서 내 마음이 떠나자 일하는 동안 매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졌다.그리고…나는 그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의 뜻을 인사부에 알리고 중도 하차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을 저지르고 나서 내가 눈이 멀어 엄청나게 큰 실수를 했구나…하고 깨닫게 되었다. 정말 어렵게 얻은 인턴이었는데 나 혼자만의 self-centered 마음가짐에 다른 요소들을 망각한 채 저질러버렸다. 비록 인턴하는 곳에서 이해해주었고 그만둘 때에 나보고 전공에 대한 결정은 정말 잘 했다고 모든 사람들이 말해줬지만.. 동시에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는 이렇게 내 위주로 행동하는 것이 절대로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이건 어디에서 몸을 담던 간에 가장 중요한 덕목들이다. 무엇을 하든 사회라는 곳에 존재하는 공동체라는 것은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 혼자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모인 집단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곳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그리고 굳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큰 위험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나와 그들 사이의 신뢰가 깨져버린다. 내가 거짓말하는 사람을 증오하도록 싫어하듯이 책임감 없는 사람도 신뢰를 잃고 그 사람이 남에게 풍기는 향기는 구린내로 바뀔 것이다. 온 몸으로 책임감과 신뢰의 중요성을 배우고 느꼈다.
4.In the future
이번 일을 평생 마음에 두고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게 되던지 간에 신중함으로 일을 맞이하고 또 한 번 맡은 일은 맘에 들지 않더라도 인내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히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친구나 선생님, 동료들을 대할 때, 일을 할 때, 학교에서 공부할 때 조차 이번 일을 기억하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할 것이다. 이런 덕목들 없이는 아무리 공부를 잘 한들 아무리 실력이 좋은 들 이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고 또 결코 내가 원하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글은 5월 초, 아버지께 제출한 5장짜리 반성문이다.. 휴.. 이 무렵은 20대에 접어든 이후 최고로 얼굴을 들기 부끄러웠던 시간이었다..
지난 5월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한 달 동안 인턴을 하기로 했었는데, 셋째 주가 시작할 무렵 버텨내지 못하고 무턱대고 인사팀에 가서 죄송하다고 내일부터 못하겠다고 말하는 실례를 범해버렸다. 호텔과 교수이신 몇십년 선배를 아빠가 염치불구하고 찾아가서 딸자식 인턴 구해준건데 그렇게 일을 그르쳐 버린 것이다. 당연히 아빠는 화가 끝까지 치밀어올랐고, 나는 날이 밝도록 아빠에게 눈물빠지게 혼났으며, 반성문을 써내기 전에는 얼굴도 내밀지 말라고 그러셨었다.
이렇게 반성을 하며 더이상 한국에 있기가 부끄러워 비행기표 날짜를 앞당겨서 열흘 뒤 카미노길에 올랐다.. 당시 글을 쓰긴 했으나 아빠에게 스스로 찾아가서 드리기가 뭐해서 바탕화면에 저장해놓고는 그냥 스페인으로 사라졌었는데, 결국 나중에 컴퓨터를 쓰시면서 아빠가 읽으셨다고 한다. 나름 심각했는데 반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중간에 개그가 가미된 부분과 5장을 채우기 위해 나름 꼼수를 쓴 부분이 보인다...
초등학교 다닐 적엔 나름 글 잘 쓴다는 소리도 듣고 글짓기상도 여러 번 받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내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을 까...
티스토리에 내 블로그를 만들면서 자연히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도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맨 처음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블로그를 채우는 것들은 스킨이나 예쁜 글씨체, 시선을 사로잡는 image 무더기들이 아닌 그저 모노톤일 뿐인 배경을 뒤로 한 공간을 빽빽히 채우는, 때론 스크롤을 두번은 해야 다 읽을 수 있는 글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런 것들은 나에게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싸이월드를 열심히 할 적에는 (2003년부터 얼마 전까지 어언 5년 동안이나!)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배경노래로 현재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었고, 기분따라 새로운 스킨을 적용하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의 홈피에서 나의 기분을 대변해 주는 듯한 짧고 함축적인 글이 덧붙여진 사진들을 퍼오는 것이었고, 나 자신 또한 다이어리에 시같은, 내 일촌이 보면 이건 무슨 일로 이렇게 쓴걸까..하며 궁금해하게끔 쓰여진 한두줄의 시 같은 글을 쓰고 '아 잘썼구나..ㅋㅋ' 하고 만족해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순간부터 내게 글이란 이런 짧은 시같은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블로그에서는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치장된 겉모습이 아닌, 진지하게 마주하여 쓰여진 글을 통해 내면의 생각과 비전을 담아내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초등학생처럼 '오늘은 이랬고 어제는 저랬다. 참 좋은 하루였다' 식의 글이기보다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고민해온 주제들과 자신이 지닌 꿈과 열정을 빈 공간에 조심스레 뱉어내는 것 말이다. 미니홈피를 할 때에는 그 조그마한 공간에 내 생각을 담아내는 것이 마치 벌거벗겨지는 것 같아 부끄럽고 촌스러운 일이라고 여겨왔는데 여기와서 그게 옳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20대라면 끝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이 무척 당연한 건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에 대해 이런저런 핑계거리가 생기는데 이를테면 중학교 때 유학을 와서 미국생활에 적응하고 수업 따라가느라 그랬다, 싸이월드의 폐혜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 등등의 것들이다. 결국은 내가 글을 소홀히 여기게 된 것에 있다고 본다. 그래도 잠시, 이게 다 날마다 발전하는 technology의 부작용 때문이라 핑계를 대본다. 나의 겉모습을 포장하는 행동과, 그렇게 해서 포장된 겉모습이 나를 표현하는 길이라고 여겨지게 되는 것 말이다.
여하튼, 진지한 글 하나가 스킨 10개, 배경음악 10개, 스크랩해온 예쁜 글 백 개 부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하상오빠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큰 변화와 도전은 아니지만..
나도 요즘 내 나름대로 내면적인 전환점을 맞은 것 같다.
아니.. 이게 어느 한 순간이 아니니 전환기라고 해야겠다.
지나간 것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버리고나니 이제는 앞이 보이는 듯 하다.
아니.. 사실 보이는 건 아니지만..
at least, 어느 쪽이 앞쪽인지는 알것같다.
확실히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 같아.
special thanks to all those around me..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한국에 있는 가끔 네이트온으로 안부 한 마디씩 던져주는 친구들도 고맙고.
비록 서로 바빠 대화를 많이 못 나눠도 그냥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된다. 내가 이런 사람들을 만나려고 여기를 왔구나. 보기만 해도 도전이 되는 사람들. 정말 멋있는 사람들이다.
갖고 있는 고민들이 다 풀린 건 아니고 해결책이 제시 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다 잘 될거라 믿는다.. =)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에 말끝마다 '같다'를 붙인다고 엄마한테 선생님한테 맨날 잔소리 들었었는데.. 지금도 '같다' 쓰는 버릇은 여전하다.... ㅋㅋ revise한게 저정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