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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6/06 2008년 6월 4일 (Ledigos-> El Burgo Ranero) (3)
- 2009/04/16 2008년 5월 17일 (1)
- 2009/02/12 반가워요 (2)
- 2008/12/26 산티아고 가는 길 1 (6)
혼자 7km 가량 걸으면서는 화살표도 잘 보이지가 않아서 잘 가는 건지 아닌건지 갸우뚱하며, 도마뱀도 가끔 보며 목적지에 도착했고, 그 때는 6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보통 이른 오후쯤에 순례자들이 짐을 풀기 때문에 이 마을의 알베르게가 다 꽉차면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만일 좀 더 비싼 호스탈에 묵어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고생을 더 했을 때 당당히 돈을 더 내고 묵을 수 있게 다음마을까지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마을로 들어섰다. 하지만..ㅠㅠ 정말 숙소가 다 꽉 차버렸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알베르게 앞에 앉아있던 영국엑센트를 가진 아저씨가 지금 storm이 오는 것 같다고 자기같으면 알베르게 맨바닥에 자던 호스탈에 가던 이 마을에 남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 속으로 다짐한 것이 있었고 여기에 그냥 남자니 나중에 해보지 않은 걸 후회할 것 같았다.
"I'd better get going."
"Oh.. okay. What's your name? Okay, Soyae, good luck!"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에서 나눈 우리 대화는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자와 배웅하는 자의 그것처럼 비장했다.
그렇게 멋있게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난 나였지만 막상 가려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마을을 나서자마자 비바람이 드세지는 모양이 마치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큰 소리로 하나님께 지켜달라고 기도하며 우비를 둘러쓰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주위를 둘러봐도 떠난 마을조차 보이지 않았고 사람도 없었다. 점점 마음이 약해졌다.
그 때 어떤 경운기가 저 길 앞쪽에서 다가왔다. 그냥 지나갈 줄 알았던 경운기는 멈추더니 그 안의 아저씨가 나보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순간 다음 마을까지 걸어가겠다던 내 신념은 온데간데 없이 "아싸, 아저씨가 태워주는구나~" 하며 얼른 폴짝 올라탔다. 아... 탄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그 아저씨가 도통 무슨 말을 하는건지를 못알아듣겠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서로의 언어로만 얘기를 하다가 결국 Adios를 외치고 경운기에서 하차했다..
경운기를 떠나보내고 한참을 걸어가니 다시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경운기아저씨와 손짓발짓으로 대화하려 노력하는 중에 처음같은 두려움은 덜어졌던 것 같다. 그렇게 10분 쯤 걷는데 길 저쪽 끝에서 믿기지 않는 광경이 보였다. 흐린 안개 속에서 어떤 구름 떼거리와 사람 형체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눈을 씻고 보니 양 떼와 한 목자가 개 세마리의 호위 속에서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나는 실로 예수님이 살아서 내게 오시려는 줄 알았다. 길 잃은 어린 양을 찾으러...
내 쪽에 다가왔을 때 카메라를 얼른 집어 든 나를 보고 목자는 포즈를 잡아주었다. 내가 자기를 예수님으로 착각했었던걸 알았나보다. 서로 인사를 하고 제 갈 길을 가는 목자와 양들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난 듯한 기분..
나는 계속 걸었고 그렇게 해서 7.8km떨어져 있는 마을을 약 두시간 만에 도착했다. 운좋게도 그 마을 전체를 통틀어 딱 하나 남은 침대를 내가 차지할 수 있었다. 호스피탈레라(알베르게의 여주인)이 어찌나 고맙던지 꼭 껴안고 뽀뽀해주고픈 심정이었다.
아... 한번 쓴 걸 날렸더니 다시 쓸 기운이 없어져버렸지만ㅠㅠ 그래도 조금씩 써보기로 했다.
5월 16일 부터 17일에 걸쳐 인천공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내린 후 밤기차를 타고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계에 있는 생장이라는 곳에까지 왔다. 생장으로 오는 두 칸짜리 기차를 탔던 바욘에서 어떤 한국인을 만났었다. 생장행 기차표를 사려고 불어로 된 매표기를 두리번거리면서 헤매고 있을 때 사투리가 섞인 어조로, "멀리서 딱 보니 한국인인 것 같아서" 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해서 , 알게 된 화진언니와 생장에 기차에서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이 길을 걷게 된 이유.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 전엔 뭐했는지. 길을 다 걸으면 뭘 할건지 등등.. 드디어 생장에 도착하고 보니 아침 9시.. 순례자사무소에 가서 순례자여권을 발급받고 순례자의 상징인 조개껍데기를 가방에 매달고 무릎에 덜 무리가 가도록 지팡이를 하나 사들었다. 바욘에서 두 칸짜리 기차를 같이 타고 왔던 무리들은 대부분 생장에서 머물기로 해서 근처 순례자숙소에 들어갔고 나는 고민하다가 두시간 떨어진 곳에 가서 짐을 풀기로 했다. 언니는 먼저 떠난 후라 갑자기 혼자가 된 나는 출발 하기 직전 또다시 두려워졌다. 아무도 모르는 곳의 길거리에 떡하니 있는 내가 도통 믿겨지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두번째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했지.....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다가 마을 입구에 있던 성당에 들어갔다. 나에게는 낯선 성당. 미사가 끝난 직후라 문은 열려있었고, 가방을 내려놓고 들어가보니까 몇몇 할머니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나도 눈물날 것 같은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한 쪽에 앉아서 기도를 했다.
왠지 너무 행복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는데 그걸 이제야 알다니..
저녁을 먹은 후의 순례자들. 왼쪽의 두명이 나와 첫째밤을 한 방에서 묵었던 스위스 모녀다. Florina 와 Fatima인데 딸이 2주간 휴가가 나서 그 기간동안만 Burgos까지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들을 보며 두 가지가 너무나 부러웠다. 하나는 이런 예쁜 길이 같은 대륙에 있어서 휴가 때 등 시간 날 때 part-time으로 걸을 수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엄마와 딸이 그렇게 함께 걸어간다는 것. 나도 지금은 내 자신 챙기느라 혼자 왔지만 나중에 결혼을 하면 남편과 오거나 아니면 부모님과 같이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시간이 되어 오늘 같이 묵게 된 순례자들이 다같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나 뿐이 아니고 모두에게 첫째 날이라 다들 상기된 표정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좀 더 깊은 얘기도 했다. 어떤 할머니는 할 줄 아는 언어가 독일어 불어 영어 이런식으로 여러가지를 할 수 있어서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이 대화할 수 있게 통역도 해주고. ㅎ 동양인은 나뿐이었고 또 내가 최연소였다. ㅎㅎ 사실..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길위에서는 내가 나이가 거의 제일 어린 편에 속해 걷는 내내 귀여움을 받았다. ㅎㅎ 내 볼따구가 하루에 한번씩은 꼭 꼬집히거나 쓰다듬어졌던 것 같다. ㅋㅋ
+. 평화
소예씨
반가워요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서울에 사시는 어떤 분이
까미노 다녀오셔서 책을 한권 내시겠다고 쓰신 글을 봐 달라고 보내와서
그 글을 읽으면서
원미씨, 소예씨 생각을 했었는데
마술 처럼
생각하지도 못했던 소식을 받았어요
잘 지내지요?
미국에 가 있는지, 아니면 한국인지
궁금하네요
저는 원주에 있구요
저희 천주교 원주 교구청에서 사회사목을 맡고 있어요
만일 한국이면
원미씨랑 같이 보면 좋겠어요
원미씨에게도
저한테 연락 좀 하라 전해 주세요
제 전화는 011 - 9XXX -XXXX 이구요
반가워요
늘 건강하고
그 때 그 모습 - 참 좋았어요
그렇게 잘 지내세요
안녕
이우갑 신부
며칠 전 네이트온에서 오랜만에 원미언니와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같이 카미노를 걸었던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흘러나왔다. 얼마 전 경희언니를 만났다면서 서로 다들 너무 보고싶어한다고 난리였단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가 자연스럽게 신부님 소식도 궁금해졌고 언니는 교구청 홈페이지에서 신부님 이멜주소를 찾을 수 있을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바로 찾아봐서 알아낸 주소로 혹시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여 보낸 이메일에 드디어 "반가워요"란 제목으로 답장이 왔다.
까미노 첫날, Hunto라는 생장에서 걸어서 두시간 거리에서 하루 묵고 20km에 가까운 피레네 산맥을 가까스로 넘어 론세스발레스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숙소 앞 나무 아래 짐을 옆에 두고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앉아있는 신부님을 처음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차역에서 만난 화진언니와 피레네산맥을 정신없이 죽을둥 살둥 넘으면서 잠시 얼굴을 스친 경희언니 이후로 처음 말을 텄던 한국인 신부님이었다. 처음에 불어로 프랑스인 순례자들과 얘기하길래 아 프랑스계 사람인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보시는걸 보고 아 한국분이시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 땐 신부님이 내 카미노길에서 one of the most influential people이 될 줄 상상도 못했었는데.
길 위에서 신부님이랑은 깊은 얘기를 가장 많이 나눴던 분이시다. 어쩌면 까미노에서 뿐만 아니라 내 삶을 살아오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고민을 가장 많이 털어놓았는지도 모른다. 진로, 종교, 나 자신, 그리고 인간관계 등 여러가지 주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화두를 가끔은 본인도 모르게 던져주시고 그런 과정에서 나를 더 많이 돌아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Arcos에서 묵을 때 경희언니 원미언니랑 이렇게 넷이 pilgrim's menu를 와인과 함께 마시면서 다같이 내 진로와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을 했던 밤이 있었다. 그 때 신부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 기억나는거는 해보고싶은것 궁금한것 다 도전해보고 경험해보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그날밤, 다음으로 큰 마을에 도착했을 때 (레온이었나? ) 레게머리를 하기로 하고 축배를들고 잠에 들었는데, 머리하는 곳을 못찾아서 포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 신부님과 원미언니랑 계속 같이 다니기로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항상 묵고싶은 마을의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보면 이미 그들 중 하나가 빨래를 마치고 널고있던지 아니면 내가 샤워랑 빨래를 마칠때 쯤에 우비를 뒤집어쓰고 내가 묵는 숙소로 순례자여권을 들고 들어왔었다. 어떤 때는 다른 새로운 사람들이랑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일부러 하루에 30km를 걸어서 더 먼 마을에 가거나 아니면 심지어 하루에 5키로만 걷고 쉰적도 있고 그랬었는데 결국은 다 만나게 되었던게 신기하기도 했었다. 이틀 연속으로 그런식으로 피하려고 했는데도 또 만났을 때에는 "어휴 왜 여기 있어요~" 하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투덜거리기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ㅎㅎ
까미노 길의 중반에 들 무렵 (내 생각엔 메세타 고원을 걸을때 쯤이었던 것 같다) 신부님이 처음으로 자신의 얘기를 해주셨던 적이 있었다. 원래 처음부터 신부님이 되시기로 한 것은 아니시었다고 하시면서 한때 미술사를 공부했었고 건축으로 공대에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신학교에 가서 신부님이 되신 거라고 하셨다. 그때 몹시 진로때문에 방황을 하던 나와 너무 비슷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 하나뿐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쩐지 이런 상황에 대해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았다.
공부방을 운영하시는 얘기를 하면서 그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 얘기를 하시면서 나에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 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말씀은 정말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 말씀을 해주셨을 때의 주위 풍경이랑 다.
신부님이랑 있었던 에피소드를 나열하자면 정말 끝이 없다. 길에서 짐 풀고 미사드린 일이랑 원미언니와 함께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가방과 지팡이로 길 막고 삥 뜯은 일(50센트 ㅋㅋ) 스페인의 성당 건축과 역사에 대해서 배운 일 등등.
무엇보다도 신부님을 포함해 까미노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사람과 사람이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하고 축복받은 일인지를 알려주었던 것 같다. 또 소통을 하는 데에는 언어가 필수요소가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마음이 통하면 그게 바로 소통이 아닐까. 그래서 요즘에도 그 때를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뜨거워진다.
이걸 여름에 만들었는데 여행기를 완성하려면 30개는 더 만들어야겠구나..하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다음 것을 시작할 엄두를 못냈던 기억이 있다.. 다음 내용을 곧 쓸거라는 장담은 못하겠다..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