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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6/06 2008년 6월 4일 (Ledigos-> El Burgo Ranero) (3)
  4. 2009/04/16 2008년 5월 17일 (1)
  5. 2009/02/12 반가워요 (2)
  6. 2008/12/26 산티아고 가는 길 1 (6)
Camino de Santiago 20082010/04/02 20:06
비행기 안이다.
필리에서 마드리드에 가는 중이다. 아.... 가기 전까지 정말 정신 하나도 없었다. 모든 걸 잘 마무리하고 떠나면 좋았을텐데 정말 나에겐 '끈기'라는게 전혀 없는 건지 마지막 날에 제대로 망해버렸다. 그것만 생각하면 정말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는데 여행하는 도중에는 그냥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기 직전 만감이 교차했었다. 랩탑을 가져가야하나 Portu에 가서 숙제한담에 랩탑을 산티아고우체국으로 부쳐야 하나, 돌아올 때 머무를 마드리드 호텔에 미리 가서 맡겨놔야하나. 아니면 여행을 포기해야하나. 그렇게 되면 경욱언니한테는 어떻게 말해야 하나.. 와.... 정말 다시는 이런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다. 나도 모르게 게을러진 댓가를 아주 톡톡히 치른 것 같다. 

33일 걸었던 카미노, 이번엔 4일이나 5일 밖에 걷지 못할 생각을 하니 이번 여행이 장난 같이만 느껴진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이번 카미노에서 뭘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시간 조차 없었기에 이번엔 무엇을 얻을지 정말.... 아 나도 모르겠다. 너무 섣불리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 같다. 2년 전처럼 내 진로를 알고 싶은 desperate한 감정도 거의 없다. 2년 전엔 내가 삶이 뭔지, 나는 누군지 알고자 하는 갈망이 무척 컸기 때문에 그만큼 배우고 성장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무언가 느낄 수 있을까? 과연?

인생을 게임에 비유하자면, 나는 2년 전 카미노를 통해 stage3을 깼고 지금은 stage4에서 입구를 찾아야 하는데 지금 상황이 꼭 stage3에 가서 했던 게임을 다시 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적어도 이 순간은 그런 생각이 든다. 막상 포르투에 가서 순례자여권을 받고 조개를 가방에 달고, 화살표를 만나면 이런 느낌이 없어질까?

그래도 좋은 건 2년 전 그 시간들이 다시 새록새록 기억이 나면서 행복해지는 듯한 기분 때문일거다. 

신부님이 너무 보고싶다. 그 때를 회상해보면 정말 기적같은 만남이었고 기적같은 인연이었다. 지금은 연락이 잘 되지 않지만 난 믿는다. 언젠가는 꼭 다시 뵐 수 있을거라고. 그런데 가끔은 궁금해진다. 이게 대체 어떤 감정일까? 내 삶에서 가장 큰 정신적 turning point였던 카미노에서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기 때문에 더 심적으로 attached 된 걸까? 아니면 뭘까.

아.. 갑자기 이번 겨울방학 끝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었던 오두막(The Shack)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주인공은 납치살해로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을 잃고 3년을 죄책감에 힘들어하는데 어느 날 딸이 살해당했던, 그 흔적이 아직도 있는 오두막으로 하나님의 초대를 받아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흑인의 모습을 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만나게 되고 '용서'를 배우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내 줄거리 설명이 정말 허접하지만 아무튼 그런 내용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비행기에서 읽으면서 (엄마와 막 헤어져서 그런지) 중학교 때 읽은 '가시고기' 이후로 눈물이 앞을 가려서 차마 책장을 한번에 넘기지 못하고 덮었다 폈다를 반복, 결국 12시간에 걸쳐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서야 느끼는 건데, 길에서 만난 신부님, 33일 동안 뵜던 신부님이 나에겐 그 주인공이 만난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내가 주절주절 늘어놓는 얘기는 들으시면서도 정작 신부님 자신에 대한 얘기는 별로 안하셨고 (신부님 연세를 카미노 끝나기 1주일 전에야 알았으니!! 그것도 미사를 마치고 이탈리안 순례자가 물어봐서 대답하시는 걸 엿들어서 알아낸 것이다), 조용하시면서 은근 웃기시기도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원미언니, 나, 그리고 신부님 이렇게 다녔는데, 왜 우리는 헤어지고 싶어도 자꾸 마주치는거냐고 푸념을 늘어놓으면 "셋 다 이름에 '우'가 껴서 그래요" 이러시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가 내 이름엔 '소'가 있고 신부님은 성함이 이 우 갑 이시니 '우'자가 들어가 있고 원미언니는 소띠라서 그렇게 자꾸 마주친다는.... 아 정말 황당해서 2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길가다가 3개월째 카미노에 있는 지친 한국인 순례자분들이 미사드리고 싶다고 해서 그자리에서 자리펴고 미사드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여하튼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나한테 해주고 싶으셨던 말씀을 신부님 행동과 입을 통해 하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두막에서 주인공 앞에 흑인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처럼, 나에겐 목사님이 아닌 신부님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신게 아닐까. 물론 끼워맞추기 식의 논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아무쪼록 이번 여행.. 사고 없이 별 탈 없이 또 다른 무언가 (사람, 추억, 휴식 등등..)를  얻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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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o 20082009/06/23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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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카미노
Camino de Santiago 20082009/06/06 02:32
항상 별 일이 있어도 오늘은 평범하게 지나가는구나 했는데, 오늘도 역시나 별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보통 알람소리보다는 주변침대에서 먼저 일어나 부스럭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저절로 깨곤 하는데, 다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나도 늦게 일어났다. 이왕 늦은 김에 그 숙소의 bar에 눌러 앉아 집에 전화도 하고 colacao(코코아)와 크로아상을 먹고 원미언니와 느긋하게 사하군까지 14km 가량 걸어갓고 그곳에서 한참 전에 도착한 신부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도 정말 신기했던게 보통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길이 아닌 길로 돌아서 걸어가는 중이었기에 신부님을 만나리라 상상도 못하고 있었는데 광장에 있는 레스토랑의 바깥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발을 살피는 신부님을 보고는 우리는 정말 인연인가보다 하고 원미언니랑 얘기했었다. 그렇게 셋이 또 앉아 점심으로 menu peregrino를 로즈와인과 함께 먹었다. 배를 채운 후 언니와 신부님은 몸상태를 봐서 사하군에 머무르겠다고 했고, 나는 10km를 더 걸어가서 자겠다고 하며 혼자 길을 떠났다. 그 때가 세시였다.

혼자 7km 가량 걸으면서는 화살표도 잘 보이지가 않아서 잘 가는 건지 아닌건지 갸우뚱하며, 도마뱀도 가끔 보며 목적지에 도착했고, 그 때는 6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보통 이른 오후쯤에 순례자들이 짐을 풀기 때문에 이 마을의 알베르게가 다 꽉차면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만일 좀 더 비싼 호스탈에 묵어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고생을 더 했을 때 당당히 돈을 더 내고 묵을 수 있게 다음마을까지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마을로 들어섰다. 하지만..ㅠㅠ 정말 숙소가 다 꽉 차버렸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알베르게 앞에 앉아있던 영국엑센트를 가진 아저씨가 지금 storm이 오는 것 같다고 자기같으면 알베르게 맨바닥에 자던 호스탈에 가던 이 마을에 남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 속으로 다짐한 것이 있었고 여기에 그냥 남자니 나중에 해보지 않은 걸 후회할 것 같았다.

"I'd better get going."
"Oh.. okay. What's your name? Okay, Soyae, good luck!"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에서 나눈 우리 대화는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자와 배웅하는 자의 그것처럼 비장했다.


그렇게 멋있게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난 나였지만 막상 가려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마을을 나서자마자 비바람이 드세지는 모양이 마치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큰 소리로 하나님께 지켜달라고 기도하며 우비를 둘러쓰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주위를 둘러봐도 떠난 마을조차 보이지 않았고 사람도 없었다. 점점 마음이 약해졌다.

그 때 어떤 경운기가 저 길 앞쪽에서 다가왔다. 그냥 지나갈 줄 알았던 경운기는 멈추더니 그 안의 아저씨가 나보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순간 다음 마을까지 걸어가겠다던 내 신념은 온데간데 없이 "아싸, 아저씨가 태워주는구나~" 하며 얼른 폴짝 올라탔다. 아... 탄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그 아저씨가 도통 무슨 말을 하는건지를 못알아듣겠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서로의 언어로만 얘기를 하다가 결국 Adios를 외치고 경운기에서 하차했다..

경운기를 떠나보내고 한참을 걸어가니 다시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경운기아저씨와 손짓발짓으로 대화하려 노력하는 중에 처음같은 두려움은 덜어졌던 것 같다. 그렇게 10분 쯤 걷는데 길 저쪽 끝에서 믿기지 않는 광경이 보였다. 흐린 안개 속에서 어떤 구름 떼거리와 사람 형체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눈을 씻고 보니 양 떼와 한 목자가 개 세마리의 호위 속에서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나는 실로 예수님이 살아서 내게 오시려는 줄 알았다. 길 잃은 어린 양을 찾으러...

내 쪽에 다가왔을 때 카메라를 얼른 집어 든 나를 보고 목자는 포즈를 잡아주었다. 내가 자기를 예수님으로 착각했었던걸 알았나보다. 서로 인사를 하고 제 갈 길을 가는 목자와 양들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난 듯한 기분..

나는 계속 걸었고 그렇게 해서 7.8km떨어져 있는 마을을 약 두시간 만에 도착했다. 운좋게도 그 마을 전체를 통틀어 딱 하나 남은 침대를 내가 차지할 수 있었다. 호스피탈레라(알베르게의 여주인)이 어찌나 고맙던지 꼭 껴안고 뽀뽀해주고픈 심정이었다.

이리하여 2008년 6월 8일, 사하군에서부터 17km를 더 걸어 총 30km를 걸었다.
항상 생각하지만 카미노에서는 하루하루가 정말 내게 큰 의미로 남겨지는 것 같다. 특히 오늘은 하나님의 존재가 온몸으로 온맘으로 느껴졌던 날이었다.

아침에만 해도 화창했던 날씨

문에 그려진 대빵 큰 화살표

Sahagun의 성당 앞에 세워진 순례자상. 한국에서 읽은 김효선씨의 책에서 본 동상, 나도 찍어봤다.

우리가 Sahagun에서 마셨던 로즈와인과 신부님 ㅋㅋ

혼자 걸은 길

자전거 가족. 아빠는 딸이탄 유모차를 끌고 엄마는 아들과 함께 2인 자전거를 탔다

급흐려지는 날씨..이후에는 날씨가 너무 안좋아서 카메라를 꺼낼 수도 없었다.

경운기와 이별한 후..

멀리서 다가오는 목자



착한 목자아저씨




도착해서 정말 기뻤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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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des of March
Camino de Santiago 20082009/04/16 21:01

아... 한번 쓴 걸 날렸더니 다시 쓸 기운이 없어져버렸지만ㅠㅠ 그래도 조금씩 써보기로 했다.

5월 16일 부터 17일에 걸쳐 인천공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내린 후 밤기차를 타고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계에 있는 생장이라는 곳에까지 왔다. 생장으로 오는 두 칸짜리 기차를 탔던 바욘에서 어떤 한국인을 만났었다. 생장행 기차표를 사려고 불어로 된 매표기를 두리번거리면서 헤매고 있을 때 사투리가 섞인 어조로, "멀리서 딱 보니 한국인인 것 같아서" 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해서 , 알게 된 화진언니와 생장에 기차에서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이 길을 걷게 된 이유.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 전엔 뭐했는지. 길을 다 걸으면 뭘 할건지 등등.. 드디어 생장에 도착하고 보니 아침 9시.. 순례자사무소에 가서 순례자여권을 발급받고 순례자의 상징인 조개껍데기를 가방에 매달고 무릎에 덜 무리가 가도록 지팡이를 하나 사들었다. 바욘에서 두 칸짜리 기차를 같이 타고 왔던 무리들은 대부분 생장에서 머물기로 해서 근처 순례자숙소에 들어갔고 나는 고민하다가 두시간 떨어진 곳에 가서 짐을 풀기로 했다. 언니는 먼저 떠난 후라 갑자기 혼자가 된 나는 출발 하기 직전 또다시 두려워졌다. 아무도 모르는 곳의 길거리에 떡하니 있는 내가 도통 믿겨지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두번째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했지.....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다가 마을 입구에 있던 성당에 들어갔다. 나에게는 낯선 성당. 미사가 끝난 직후라 문은 열려있었고, 가방을 내려놓고 들어가보니까 몇몇 할머니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나도 눈물날 것 같은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한 쪽에 앉아서 기도를 했다.

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 그리고 11kg을 짊어진 나. Hunto로 출발하기 직전.

 
이 콘크리트 언덕이 바로 내 한 달을 보낸 까미노의 시작이다.


까미노 길을 알려주는 첫번째 표시. 나의 안내자 ㅎㅎ


길을 걷는 33일 내내 양, 소, 말 등 여러 동물을 많이 봐왔는데 길에서 처음 본 소. 그냥 갖다 붙이기지만...
           왠지 나보고 잘 걸어내라는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다.


두시간 죽어라 산을 탄 끝에 도착한 Hunto에 있는 알베르게. 두시간 고생해서 올라온 보람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 전망이었다. 사설 알베르게라 안내책자에서 봤던 공립 알베르게보다는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29유로) 그래도 첫날 밤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짐을 풀고 빨래를 하고 씻은 후 숙소 밖으로 나왔다. 알베르게 마당이다.


하늘의 명암이 뚜렷한 구름과 그 아래로 펼쳐진 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워보였다.
왠지 너무 행복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는데 그걸 이제야 알다니..


옆에서 수다떨고 있던 독일인 아줌마 중 하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저녁을 먹은 후의 순례자들. 왼쪽의 두명이 나와 첫째밤을 한 방에서 묵었던 스위스 모녀다. Florina 와 Fatima인데 딸이 2주간 휴가가 나서 그 기간동안만 Burgos까지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들을 보며 두 가지가 너무나 부러웠다. 하나는 이런 예쁜 길이 같은 대륙에 있어서 휴가 때 등 시간 날 때 part-time으로 걸을 수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엄마와 딸이 그렇게 함께 걸어간다는 것. 나도 지금은 내 자신 챙기느라 혼자 왔지만 나중에 결혼을 하면 남편과 오거나 아니면 부모님과 같이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시간이 되어 오늘 같이 묵게 된 순례자들이 다같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나 뿐이 아니고 모두에게 첫째 날이라 다들 상기된 표정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좀 더 깊은 얘기도 했다. 어떤 할머니는 할 줄 아는 언어가 독일어 불어 영어 이런식으로 여러가지를 할 수 있어서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이 대화할 수 있게 통역도 해주고. ㅎ 동양인은 나뿐이었고 또 내가 최연소였다. ㅎㅎ 사실..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길위에서는 내가 나이가 거의 제일 어린 편에 속해 걷는 내내 귀여움을 받았다. ㅎㅎ 내 볼따구가 하루에 한번씩은 꼭 꼬집히거나 쓰다듬어졌던 것 같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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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des of March
Camino de Santiago 20082009/02/12 00:10

 

+. 평화

 

소예씨

 

반가워요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서울에 사시는 어떤 분이

까미노 다녀오셔서 책을 한권 내시겠다고 쓰신 글을 봐 달라고 보내와서

그 글을 읽으면서

원미씨, 소예씨 생각을 했었는데

마술 처럼

생각하지도 못했던 소식을 받았어요

 

잘 지내지요?

미국에 가 있는지, 아니면 한국인지

궁금하네요

 

저는 원주에 있구요

저희 천주교 원주 교구청에서 사회사목을 맡고 있어요

 

만일 한국이면

원미씨랑 같이 보면 좋겠어요

원미씨에게도

저한테 연락 좀 하라 전해 주세요

 

제 전화는 011 - 9XXX -XXXX 이구요

 

반가워요

늘 건강하고

 

그 때 그 모습 - 참 좋았어요

그렇게 잘 지내세요

 

안녕

 

이우갑 신부



며칠 전 네이트온에서 오랜만에 원미언니와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같이 카미노를 걸었던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흘러나왔다. 얼마 전 경희언니를 만났다면서 서로 다들 너무 보고싶어한다고 난리였단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가 자연스럽게 신부님 소식도 궁금해졌고 언니는 교구청 홈페이지에서 신부님 이멜주소를 찾을 수 있을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바로 찾아봐서 알아낸 주소로 혹시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여 보낸 이메일에 드디어 "반가워요"란 제목으로 답장이 왔다.

까미노 첫날, Hunto라는 생장에서 걸어서 두시간 거리에서 하루 묵고 20km에 가까운 피레네 산맥을 가까스로 넘어 론세스발레스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숙소 앞 나무 아래 짐을 옆에 두고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앉아있는 신부님을 처음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차역에서 만난 화진언니와 피레네산맥을 정신없이 죽을둥 살둥 넘으면서  잠시 얼굴을 스친 경희언니 이후로 처음 말을 텄던 한국인 신부님이었다. 처음에 불어로 프랑스인 순례자들과 얘기하길래 아 프랑스계 사람인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보시는걸 보고 아 한국분이시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 땐 신부님이 내 카미노길에서 one of the most influential people이 될 줄 상상도 못했었는데. 

길 위에서 신부님이랑은 깊은 얘기를 가장 많이 나눴던 분이시다. 어쩌면 까미노에서 뿐만 아니라 내 삶을 살아오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고민을 가장 많이 털어놓았는지도 모른다. 진로, 종교, 나 자신, 그리고 인간관계 등 여러가지 주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화두를  가끔은 본인도 모르게 던져주시고 그런 과정에서 나를 더 많이 돌아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Arcos에서 묵을 때 경희언니 원미언니랑 이렇게 넷이 pilgrim's menu를 와인과 함께 마시면서 다같이 내 진로와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을 했던 밤이 있었다. 그 때 신부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 기억나는거는 해보고싶은것 궁금한것 다 도전해보고 경험해보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그날밤, 다음으로 큰 마을에 도착했을 때 (레온이었나? ) 레게머리를 하기로 하고 축배를들고 잠에 들었는데, 머리하는 곳을 못찾아서 포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 신부님과 원미언니랑 계속 같이 다니기로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항상 묵고싶은 마을의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보면 이미 그들 중 하나가 빨래를 마치고 널고있던지 아니면 내가 샤워랑 빨래를 마칠때 쯤에 우비를 뒤집어쓰고 내가 묵는 숙소로 순례자여권을 들고 들어왔었다. 어떤 때는 다른 새로운 사람들이랑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일부러 하루에 30km를 걸어서 더 먼 마을에 가거나 아니면 심지어 하루에 5키로만 걷고 쉰적도 있고 그랬었는데 결국은 다 만나게 되었던게 신기하기도 했었다. 이틀 연속으로 그런식으로 피하려고 했는데도 또 만났을 때에는 "어휴 왜 여기 있어요~" 하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투덜거리기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ㅎㅎ

까미노 길의 중반에 들 무렵 (내 생각엔 메세타 고원을 걸을때 쯤이었던 것 같다) 신부님이 처음으로 자신의 얘기를 해주셨던 적이 있었다. 원래 처음부터 신부님이 되시기로 한 것은 아니시었다고 하시면서 한때 미술사를 공부했었고 건축으로 공대에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신학교에 가서 신부님이 되신 거라고 하셨다. 그때 몹시 진로때문에 방황을 하던 나와 너무 비슷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 하나뿐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쩐지 이런 상황에 대해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았다.

공부방을 운영하시는 얘기를 하면서 그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 얘기를 하시면서 나에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 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말씀은 정말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 말씀을 해주셨을 때의 주위 풍경이랑 다.

신부님이랑 있었던 에피소드를 나열하자면 정말 끝이 없다. 길에서 짐 풀고 미사드린 일이랑 원미언니와 함께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가방과 지팡이로 길 막고 삥 뜯은 일(50센트 ㅋㅋ) 스페인의 성당 건축과 역사에 대해서 배운 일 등등. 

무엇보다도 신부님을 포함해 까미노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사람과 사람이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하고 축복받은 일인지를 알려주었던 것 같다. 또 소통을 하는 데에는 언어가 필수요소가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마음이 통하면 그게 바로 소통이 아닐까. 그래서 요즘에도 그 때를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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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des of March
Camino de Santiago 20082008/12/26 08:15



이걸 여름에 만들었는데 여행기를 완성하려면 30개는 더 만들어야겠구나..하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다음 것을 시작할 엄두를 못냈던 기억이 있다.. 다음 내용을 곧 쓸거라는 장담은 못하겠다..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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