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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2/12 반가워요 (2)
Camino de Santiago 20082010/04/02 20:06
비행기 안이다.
필리에서 마드리드에 가는 중이다. 아.... 가기 전까지 정말 정신 하나도 없었다. 모든 걸 잘 마무리하고 떠나면 좋았을텐데 정말 나에겐 '끈기'라는게 전혀 없는 건지 마지막 날에 제대로 망해버렸다. 그것만 생각하면 정말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는데 여행하는 도중에는 그냥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기 직전 만감이 교차했었다. 랩탑을 가져가야하나 Portu에 가서 숙제한담에 랩탑을 산티아고우체국으로 부쳐야 하나, 돌아올 때 머무를 마드리드 호텔에 미리 가서 맡겨놔야하나. 아니면 여행을 포기해야하나. 그렇게 되면 경욱언니한테는 어떻게 말해야 하나.. 와.... 정말 다시는 이런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다. 나도 모르게 게을러진 댓가를 아주 톡톡히 치른 것 같다. 

33일 걸었던 카미노, 이번엔 4일이나 5일 밖에 걷지 못할 생각을 하니 이번 여행이 장난 같이만 느껴진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이번 카미노에서 뭘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시간 조차 없었기에 이번엔 무엇을 얻을지 정말.... 아 나도 모르겠다. 너무 섣불리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 같다. 2년 전처럼 내 진로를 알고 싶은 desperate한 감정도 거의 없다. 2년 전엔 내가 삶이 뭔지, 나는 누군지 알고자 하는 갈망이 무척 컸기 때문에 그만큼 배우고 성장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무언가 느낄 수 있을까? 과연?

인생을 게임에 비유하자면, 나는 2년 전 카미노를 통해 stage3을 깼고 지금은 stage4에서 입구를 찾아야 하는데 지금 상황이 꼭 stage3에 가서 했던 게임을 다시 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적어도 이 순간은 그런 생각이 든다. 막상 포르투에 가서 순례자여권을 받고 조개를 가방에 달고, 화살표를 만나면 이런 느낌이 없어질까?

그래도 좋은 건 2년 전 그 시간들이 다시 새록새록 기억이 나면서 행복해지는 듯한 기분 때문일거다. 

신부님이 너무 보고싶다. 그 때를 회상해보면 정말 기적같은 만남이었고 기적같은 인연이었다. 지금은 연락이 잘 되지 않지만 난 믿는다. 언젠가는 꼭 다시 뵐 수 있을거라고. 그런데 가끔은 궁금해진다. 이게 대체 어떤 감정일까? 내 삶에서 가장 큰 정신적 turning point였던 카미노에서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기 때문에 더 심적으로 attached 된 걸까? 아니면 뭘까.

아.. 갑자기 이번 겨울방학 끝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었던 오두막(The Shack)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주인공은 납치살해로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을 잃고 3년을 죄책감에 힘들어하는데 어느 날 딸이 살해당했던, 그 흔적이 아직도 있는 오두막으로 하나님의 초대를 받아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흑인의 모습을 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만나게 되고 '용서'를 배우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내 줄거리 설명이 정말 허접하지만 아무튼 그런 내용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비행기에서 읽으면서 (엄마와 막 헤어져서 그런지) 중학교 때 읽은 '가시고기' 이후로 눈물이 앞을 가려서 차마 책장을 한번에 넘기지 못하고 덮었다 폈다를 반복, 결국 12시간에 걸쳐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서야 느끼는 건데, 길에서 만난 신부님, 33일 동안 뵜던 신부님이 나에겐 그 주인공이 만난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내가 주절주절 늘어놓는 얘기는 들으시면서도 정작 신부님 자신에 대한 얘기는 별로 안하셨고 (신부님 연세를 카미노 끝나기 1주일 전에야 알았으니!! 그것도 미사를 마치고 이탈리안 순례자가 물어봐서 대답하시는 걸 엿들어서 알아낸 것이다), 조용하시면서 은근 웃기시기도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원미언니, 나, 그리고 신부님 이렇게 다녔는데, 왜 우리는 헤어지고 싶어도 자꾸 마주치는거냐고 푸념을 늘어놓으면 "셋 다 이름에 '우'가 껴서 그래요" 이러시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가 내 이름엔 '소'가 있고 신부님은 성함이 이 우 갑 이시니 '우'자가 들어가 있고 원미언니는 소띠라서 그렇게 자꾸 마주친다는.... 아 정말 황당해서 2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길가다가 3개월째 카미노에 있는 지친 한국인 순례자분들이 미사드리고 싶다고 해서 그자리에서 자리펴고 미사드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여하튼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나한테 해주고 싶으셨던 말씀을 신부님 행동과 입을 통해 하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두막에서 주인공 앞에 흑인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처럼, 나에겐 목사님이 아닌 신부님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신게 아닐까. 물론 끼워맞추기 식의 논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아무쪼록 이번 여행.. 사고 없이 별 탈 없이 또 다른 무언가 (사람, 추억, 휴식 등등..)를  얻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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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des of March
Camino de Santiago 20082009/06/23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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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카미노
Camino de Santiago 20082009/02/12 00:10

 

+. 평화

 

소예씨

 

반가워요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서울에 사시는 어떤 분이

까미노 다녀오셔서 책을 한권 내시겠다고 쓰신 글을 봐 달라고 보내와서

그 글을 읽으면서

원미씨, 소예씨 생각을 했었는데

마술 처럼

생각하지도 못했던 소식을 받았어요

 

잘 지내지요?

미국에 가 있는지, 아니면 한국인지

궁금하네요

 

저는 원주에 있구요

저희 천주교 원주 교구청에서 사회사목을 맡고 있어요

 

만일 한국이면

원미씨랑 같이 보면 좋겠어요

원미씨에게도

저한테 연락 좀 하라 전해 주세요

 

제 전화는 011 - 9XXX -XXXX 이구요

 

반가워요

늘 건강하고

 

그 때 그 모습 - 참 좋았어요

그렇게 잘 지내세요

 

안녕

 

이우갑 신부



며칠 전 네이트온에서 오랜만에 원미언니와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같이 카미노를 걸었던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흘러나왔다. 얼마 전 경희언니를 만났다면서 서로 다들 너무 보고싶어한다고 난리였단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가 자연스럽게 신부님 소식도 궁금해졌고 언니는 교구청 홈페이지에서 신부님 이멜주소를 찾을 수 있을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바로 찾아봐서 알아낸 주소로 혹시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여 보낸 이메일에 드디어 "반가워요"란 제목으로 답장이 왔다.

까미노 첫날, Hunto라는 생장에서 걸어서 두시간 거리에서 하루 묵고 20km에 가까운 피레네 산맥을 가까스로 넘어 론세스발레스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숙소 앞 나무 아래 짐을 옆에 두고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앉아있는 신부님을 처음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차역에서 만난 화진언니와 피레네산맥을 정신없이 죽을둥 살둥 넘으면서  잠시 얼굴을 스친 경희언니 이후로 처음 말을 텄던 한국인 신부님이었다. 처음에 불어로 프랑스인 순례자들과 얘기하길래 아 프랑스계 사람인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보시는걸 보고 아 한국분이시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 땐 신부님이 내 카미노길에서 one of the most influential people이 될 줄 상상도 못했었는데. 

길 위에서 신부님이랑은 깊은 얘기를 가장 많이 나눴던 분이시다. 어쩌면 까미노에서 뿐만 아니라 내 삶을 살아오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고민을 가장 많이 털어놓았는지도 모른다. 진로, 종교, 나 자신, 그리고 인간관계 등 여러가지 주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화두를  가끔은 본인도 모르게 던져주시고 그런 과정에서 나를 더 많이 돌아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Arcos에서 묵을 때 경희언니 원미언니랑 이렇게 넷이 pilgrim's menu를 와인과 함께 마시면서 다같이 내 진로와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을 했던 밤이 있었다. 그 때 신부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 기억나는거는 해보고싶은것 궁금한것 다 도전해보고 경험해보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그날밤, 다음으로 큰 마을에 도착했을 때 (레온이었나? ) 레게머리를 하기로 하고 축배를들고 잠에 들었는데, 머리하는 곳을 못찾아서 포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 신부님과 원미언니랑 계속 같이 다니기로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항상 묵고싶은 마을의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보면 이미 그들 중 하나가 빨래를 마치고 널고있던지 아니면 내가 샤워랑 빨래를 마칠때 쯤에 우비를 뒤집어쓰고 내가 묵는 숙소로 순례자여권을 들고 들어왔었다. 어떤 때는 다른 새로운 사람들이랑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일부러 하루에 30km를 걸어서 더 먼 마을에 가거나 아니면 심지어 하루에 5키로만 걷고 쉰적도 있고 그랬었는데 결국은 다 만나게 되었던게 신기하기도 했었다. 이틀 연속으로 그런식으로 피하려고 했는데도 또 만났을 때에는 "어휴 왜 여기 있어요~" 하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투덜거리기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ㅎㅎ

까미노 길의 중반에 들 무렵 (내 생각엔 메세타 고원을 걸을때 쯤이었던 것 같다) 신부님이 처음으로 자신의 얘기를 해주셨던 적이 있었다. 원래 처음부터 신부님이 되시기로 한 것은 아니시었다고 하시면서 한때 미술사를 공부했었고 건축으로 공대에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신학교에 가서 신부님이 되신 거라고 하셨다. 그때 몹시 진로때문에 방황을 하던 나와 너무 비슷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 하나뿐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쩐지 이런 상황에 대해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았다.

공부방을 운영하시는 얘기를 하면서 그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 얘기를 하시면서 나에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 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말씀은 정말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 말씀을 해주셨을 때의 주위 풍경이랑 다.

신부님이랑 있었던 에피소드를 나열하자면 정말 끝이 없다. 길에서 짐 풀고 미사드린 일이랑 원미언니와 함께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가방과 지팡이로 길 막고 삥 뜯은 일(50센트 ㅋㅋ) 스페인의 성당 건축과 역사에 대해서 배운 일 등등. 

무엇보다도 신부님을 포함해 까미노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사람과 사람이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하고 축복받은 일인지를 알려주었던 것 같다. 또 소통을 하는 데에는 언어가 필수요소가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마음이 통하면 그게 바로 소통이 아닐까. 그래서 요즘에도 그 때를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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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des of March